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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아무것도 못하게하면 벌어지는일

by Enne7w8 2022.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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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비르바우머·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오공훈 옮김, 메디치미디어, 320쪽, 1만7000원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특정 공간에 머무르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그저 시간을 보내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 심리학자 티모시 윌슨이 그런 실험을 해봤다. 피험자에게 텅 빈 방에 들어가 15분 동안 있으라고 했다. 지시한 것은 ‘특정 주제를 곰곰이 생각해보라’는 것뿐. 스마트폰, 필기도구, 책 등 오락거리 하나 없이 15분을 머물며 스스로 정한 주제를 숙고하기만 하면 수당을 줬다. 결과는 놀라웠다. 실험 대상 400명 중 약 90%가 정신 불안을 호소했다.

윌슨은 이후 실험을 좀 더 발전시켰다. 피험자가 머무는 방에 위험하지는 않지만 사용자에게 적당히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수준의 전기충격기를 설치했다. 버튼을 누르면 9V 정도의 전류가 몸에 흐르게 한 장치다. 이후 다시 같은 실험을 진행하자 피험자 상당수가 가만히 있느니 차라리 전기 충격을 당하는 쪽을 택했다. 피학 성향을 가진 이가 실험에 참여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히 통제했음에도 그렇다. 피험자들은 평균적으로 15분 동안 7번 이상 전기충격기를 사용했다. 특히 남성의 경우 3분의 2가 적어도 한 번 이상 제 몸을 스스로 공격했다.

독일 출신의 뇌과학자 닐스 비르바우머와 저명 과학 저술가 외르크 치틀라우는 신간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에서 대체 인간은 왜 이토록 ‘텅 빈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지에 대해 논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건 현대인만의 특징이 아니다. 즐길 거리라고는 라디오와 흑백 TV 정도밖에 없던 1950년대 캐나다 학자가 설계한 실험에서도 피험자들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앉아 있는 것을 도무지 견디지 못했다. 당시 과학자는 사람이 외부 자극을 철저히 차단한 방에서 홀로 머물기만 하면 매일 20달러씩 지급하기로 약속했는데, 피험자 거의 전부가 사흘 안에 대가를 포기하고 방을 뛰쳐나가버렸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건 본질적으로 ‘인간 뇌’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뇌는 스스로 작동하는 추진체다. 뇌가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은 어떤 성과를 이루고자 하는 충동을 일으킨다. 인간 뇌에는 약 86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가 있고, 시냅스라 불리는 접합 구조를 통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 복잡한 ‘전기 장치’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가 무언가를 하도록, 외부 자극에 반응하도록 부추긴다. 자기도 모르는 새 과열돼 폭발하지 않으려면 때로는 ‘두꺼비집’을 내려야 한다는 게 저자 생각이다.

그렇게 얻어낸 공허는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충만한 기쁨을 줄 수도 있다. 그동안 수많은 선승과 철학자 등이 해온 이 주장을 저자는 과학적 분석을 통해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출산 전 자궁 속에 있는 태아 뇌에서는 몽롱한 상태를 유발하는 ‘저주파 뇌파’가 생성된다. 이를 통해 인간은 자궁에 감금된 상태를 견뎌낼 수 있다고 한다. 죽음 직전을 경험한 ‘임사체험자’ 대부분이 거대한 환희와 평화를 느꼈다는 사실도 ‘뇌의 휴식’이 오히려 인간에게 아름다운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출처 #신동아  2019년 0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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